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교황 요한나 (문단 편집) == 진실은? == 흥미위주의 음모론자들에겐 아쉽겠지만, 여교황이 실존했다고 보기엔 허점이 많다. 첫 번째로 콘스탄티노플의 기록이다. 9세기에는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사이가 매우 험악했다. 9세기 중반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폰티우스는 대표적인 로마까인데, 그쪽 기록에 당시 (여교황 재임시라 할) [[교황]] [[레오 4세]]와 [[베네딕토 3세]]에 대해서는 "로마교회에 연이어 나온 위대한 [[사제]]"라 칭찬하지만, '''여교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2번째로 2백여 년 후 콘스탄틴노플 총대주교 미카엘 케룰라리우스는 교황 [[레오 9세]]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교황 레오 9세는 '동방교회에서 여성을 대주교로 임명하고 환관들을 무분별하게 승진시킨다.'고 비판하였다. 여교황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뻔히 동방에서 그 근거를 들어 서방을 비난했을 게 뻔한데, 레오 9세의 편지에선 전혀 그런 우려가 없이 비판하였다. 즉 당시엔 여교황 전설 같은 이야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3번째로 [[레오 4세]]가 855년 7월 17일 사망했고 기록상으로도 남아있으며, [[베네딕토 3세]]가 즉위한 것은 같은 해 9월 29일이다. 베네딕토 3세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될 무렵 황제 [[로타리우스 1세]]가 사망했는데, 로마에는 사망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서 로마 은화의 한 면엔 로타리우스 1세, 한 면에는 베네딕토 교황이 주조되기도 했다. 따라서 2년 7개월이나 들키지 않고 여교황 요한나가 들어갈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또한 교황이 되려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었고, 게다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은 일시적으로는 몰라도 그리 오랫동안 숨길 수도 없으니. 일단 옷을 갈아입는 자리에서 [[교황]]을 시중드는 이들이 모를 수가 없고, (직접 여성들을 상대해 온) [[추기경]]들이 죄다 교황이 여자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오기도 어렵다. [[임신]]이 가능했다면 아직 가임기라 [[월경]]도 매달 했을 텐데, 교황처럼 온통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직책에 있는 사람이 한두 번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숨기겠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